출산동반자interview

출산센터 / 오세진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모유수유가 ‘왜’ 중요한지, 즉 ‘철학’을 넣어주려 노력했어요”

메디플라워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운명이라고 믿어요. 메디플라워의 시스템과 출산방식, 정환욱 원장님의 철학, 가치를 접하고는 우리나라에 자연주의 출산을 이렇게 제대로 하는 곳이 있구나, 자연주의 출산에 관한 신념이 이토록 확고한 분이 계셨구나 싶어 모유수유 전문가로서 반갑고도 감사했죠. 이곳에서 모유수유 전반에 관한 매니지먼트와 산모 교육, 직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연주의 출산과 모유수유가 밀접한 관계가 있나요?

네. 물론이에요. 모유수유는 단순히 엄마 젖을 먹이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산전부터 출산, 그리고 산후까지 교육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철학이 일치하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메디플라워를 만난 순간 잃어버린 반쪽의 동그라미를 찾은 기분이었어요. 다만 좀 더 조직화될 필요성이 있었어요. 이 부분을 내가 채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채우면 좋을지, 어느 부분에 어떻게 녹아드는게 최선일지를 다 함께 고민했어요. 그러다 유니세프의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을 준비하면서 구체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엄마들은 모유수유에 관해 많이들 알고 오시던지요?

관심과 지식이 많고 의욕은 넘치지만 정작 중요한 ‘how to’를 모르는 분이 많았어요. 당연하기도 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 부분을 엄마들 눈높이에 맞추어 전달하는 게 저의 과제였어요. 출산 전엔 모유수유가 ‘왜’ 중요한지, 즉 ‘철학’을 넣어주려 노력했어요. 출산 후엔 개인의 신체 상태와 내외부 환경에 맞춰 각각 다른 도움을 주려 했지요. 결국 엄마와 아기, 출산 동반자 모두가 윈윈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가족이 있다면.

모두가 기억에 남지만 얼마 전 유선염 때문에 고생했던 한 엄마가 특별히 떠올라요. 젖량이 많아서 유선염이 심한데다 농양까지 진행된 상태였어요. 엄마가 정말 힘들었지요. 그런데 그 힘든 상황에도 어떻게든 젖을 먹이려고 철저하게 조절하고 관리하고 노력했어요. 아침마다 저에게 유방 사진을 보내며 그날 그날 상황을 실시간으로 문의하였고 저 또한 최선을 다해 조언했어요. 저에게는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권리가 없어요. 엄마가 원하는 한 끝까지 돕는 것이 저의 사명이에요. 결국 그분은 본인이 원하는 만큼 끝까지 젖을 잘 먹였고 얼마 전 아기가 돌이 됐다고 연락을 해 왔어요. 엄마의 위대함 앞에서 겸허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엄마의 의지에 모유수유 전문가, 의료진, 남편, 가족 등 모두의 지지가 모여 이루어진 결과였답니다. 모유수유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위대한 협업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지요.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특별한 산전교육 없이도 모유수유를 잘해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들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에요. 저온살균법이 생기기 전, 유럽에서는 살균하지 않은 소젖을 먹고는 많은 아기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근 한 세기 동안 아픔을 경험하면서 모유수유를 문화로 받아들인 후 다각도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모유수유 증진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모유수유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이 된 거죠. 우리나라도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기는 여전히 어려워요. 많은 분들이 모유수유를 성공하고 싶어 하는데 제대로 돕는 곳을 만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물어 물어 우리 병원까지 옵니다.

선생님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정원장님과 저는 의사들이나 동료 간호사들, 직원들, 산모들에게 관련교육과 인프라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생각이 있는 분들은 마땅히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도와야죠.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할 일이 많다는 건 쓰임받을 곳이 많다는 것이죠. 참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4개 병원을 매니지먼트하여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만들었어요. 처음엔 정말 답답했는데 결국 그 ‘답답함’이 시작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어요. 태어나서 좋아하는 일을 사회에 기여하면서 재미있게 한다는 것,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내가 잘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가까운 미래에 소망하는 게 있다면?

지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일을 좀 더 잘하고 싶고, 국적을 불문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임상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근거에 입각한 실전도 중요하지만 근거 자체를 생산하는 것도 이 일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